2025.02.27
엄마집에 갈 때마다. 기억이 사라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이야기들은 밥을 먹으며 들어 그런지 내 몸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오랜시간 나의 구석구석을
후비고나서야 겨우 잊혀질까 말까한다.
기억이 사라지는 노인들은 같은 말을 몇번이고 반복하는데, 모든것을 잊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몸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의 일은 그들의 반복되는 말을 차근히 듣고 그래서 진정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끝까지 들어내는 것이라 했다.
어떤 이들은 선명한 기억과 인지보다 서둘러 나이들어버린 몸에 살기도 한다고 했다.
하고싶은것,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몸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수 많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알고, 겪는 세계가 궁금해진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무언갈 기억할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내 몸에 남는 말은 무엇일까?
내가 더 이상 계단을 두어개씩 훌쩍 뛰어 넘을 수 없을 때 내 세상은 무엇이 될까.
기억은 몸에 남은 것일까?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줄어들면 기억도 줄어드는 것일까.
2024..09. 30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의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봄이 오고 여름이 간다 어쨌든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생의 주기를 걸쳐 늘 경험했던 여러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이내 잊혀지고 나는 지금의 감각만을 생생히 느낀다.
추운 겨울에 여름의 감각은 너무나 둔하고 아스팔트가 녹을만큼 뜨거웠던 여름에 짚어보는 겨울 또한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나의 감각을 토대로 세상을 인지하고 세계를 구축한다.
견고해 보이는 나의 세계는 겨울에 떠올리는 한여름만큼이나 희미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다.
희미한 몸이 기억한 세계는 종종 어긋나고 실패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실패한 말들이 있다. 가 닿기를 염원하다 사라지는 말들도 있으며
출발했어도 도달하지 못한 말들도 있다.
언어화 되지 않는 실패의 기록들을, 말이 되지 못한 흐릿한 기억들을, 이 실패의 기록을 모아 다시 견고하게 나의 연약함을 기억하고자 한다.
2024.. 08. 25
며칠 전 산책길에 연두색 감을 주웠다. 초록색 반점이 사랑스럽다.
감이 익고 떨어지는 걸 보니 여름이 가고 천천히 가을이 오려나보다.